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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나와 함께한 건축이야기 공모전

서울의 얼굴이 되는 다양한 건축물과 거기에 얽힌 우리들의 여러 이야기를 발굴하는 시민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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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우수상

그 길이 나를 키워내고 있다.

에세이   |   이현아

10여년 전 1, 늦겨울 바람이 매섭게 부는 날, 고향 친구들과 함께 공덕역 근처의 부동산을 뒤졌다. ‘서울사람들은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더라겁을 잔뜩 먹은 우리는 집구할 때 주의해야할 점을 빼곡하게 적은 수첩을 들고, 세 명이 살만한 집을 이틀 연속으로 보러 다니느라 두 손 두 발이 꽁꽁 얼었다. 3월 따뜻한 바람이 부는 날, 우리는 각자의 짐을 최소한으로 들고 동시에 이사를 했다, 2, 거실1, 자로 멋진 발코니가 있는 3층의 빌라였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 합격해 첫 서울살이를 시작하는 나와, 다른 직장에 다니던 친구 한명, 아직 대학생인 친구까지 셋이서 구한 그 집에서, 우리는 서울에 살게 되었다며 그날 밤 모여앉아 파티를 했다. 월에 얼마씩 한 통장에 모아 월세와 생활비로 쓰자 계획을 세우고, 나름의 공동생활 규칙을 적어 냉장고에 붙였다. 한명의 귀가가 늦어지면 나머지 둘이 골목 앞으로 마중을 나갔고, 젊은 날의 고민과 사회초년생의 서러움을 함께 공감해주며 서울의 첫 집에서 딱 1년을 살았다. 대학생이던 친구는 경기도로 취직을 하였고, 다른 친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새로 집을 구해야 했다. 서울에서 나홀로 집을 구하자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막막했다. 또다시 겨울, 이번에는 혼자 시린 손을 불어가며 회사근처의 부동산을 뒤졌지만, 강남의 원룸 값은 이제 막 직장생활에 뛰어든 나에게 너무나 큰돈이었고 서울 살이 1년 만에 절망을 경험했다. 그 무렵 신청한 임대주택이 당첨되었다는 문자가 왔고, 그날 엄마에게 전화를 하여 죽으라는 법은 없나봐! 방방 뛰며 좋아했다. 회사에서 지하철2번과 버스1번을 타고 1시간 30분이 걸리는 작은 원룸이었지만, 서울의 두 번째 집은 너무나 아늑하고 소중한 공간이었다. 처음 몇 달은 왕복3시간의 출퇴근이 큰 스트레스였다. 서울사람들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왕복3시간이면 명절에 할머니 댁 가는 정도의 거리였다. 매일 경이로운 그 풍경에 뛰어들어 1년 정도 출퇴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제법 서울사람이 된 것 같았다. 출퇴근을 하는 대중교통은 이제 스트레스 대상이 아닌, 회사와 집을 이어주기도 하고 끊어주기도 하는 스위치가 된 것이다. 야근을 하고 업무스트레스에 지쳐 퇴근하던 길, 텅 빈 지하철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한 시간을 달리면, 회사에서의 일들은 그 길 위에서 까맣게 잊혀졌다. 새벽에 퇴근하던 날, 올림픽대로를 타고 집에 가는 택시 밖 풍경을 보며, 그래도 서울 살이 하는 덕에 이런 멋진 풍경의 퇴근길을 본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회사와 집을 오가는 길이 나에겐 onoff의 매개체가 된 것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지 4년이 되던 해, 나는 통장에 모인 돈으로 회사근처의 원룸을 알아보러 다녔다. 보증금과 월세를 조율해가며 내 예산에 맞는 집을 찾다보니, 아무래도 최소30분은 걸리는 곳이어야 했다. 매일 한강을 보며 출퇴근하는 기쁨을 맛보겠다며 또한번 스스로를 위로하고 구한 그 집에 이사하던 날, 고향에 있는 엄마 아빠를 불러 원룸방에 이불 펴놓고 다같이 누었다. 내가 모은 돈으로 구한 집, 뿌듯함과 설렘으로 가득찬 나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셈을 했다. 월에 얼마를 몇 년 동안 모으면 이정도의 집은 살 수 있겠지? 곧 그런 날이 오겠지? 희망찬 밤이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고, 나는 여전히 작고 소중한 나의 공간을 닦고 쓸고 애지중지하며 살고 있다. 혼자살기 딱 알맞고 제법 손때가 탄 나의 가구들과 집안 구석구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동시에 이제는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애증의 공간이기도 하다. 오늘아침에도 출근하기 전 화장실 불, 가스 밸브, 창문이 잘 닫혀있는지 확인하고, 대중교통을 통해 한강을 건너 출근을 하며, 하루의 힘을 충전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바쁜 업무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지하철에서는 오늘도 고생했다고, 어여 나의 사랑스러운 공간으로 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10년 전과 달라진 것 없는 삶이지만 20대 초반의 첫 집을 구하던 그때보다 이 삶이 더 익숙해졌고, 소중해졌고, 단단해졌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길 위에서, 끝도 없고 답도 없는 젊은 날의 고민은 지금도 계속 되지만, 그 길이 나를 키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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