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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나와 함께한 건축이야기 공모전

서울의 얼굴이 되는 다양한 건축물과 거기에 얽힌 우리들의 여러 이야기를 발굴하는 시민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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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우수상

처음이라는 흔적이었고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던 곳

에세이   |   강규일

<처음의 흔적이었고 이후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던 곳, 서울극장>

- 40여년을 이어온 종로 거리의 상징적인 영화 유산, 이젠 안녕!

 

대학 새내기에 연애를 시작했다. 토요일 주말, 종로3가역에서 내려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봤다. 멀쩡하고 단정한 머리를 굳이 다시 만져본다. 좁은 도보 위로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과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뒤섞여 종일 북적거린다. 옆으로는 잘 구워진 오징어의 냄새가 아주 구수하게 흩뿌려진다. 영화관 앞으로 딱 한 사람이 눈에 띈다. 화장한 봄 날씨, 아주 평화로운 풍경 아래에서 우리도 풋풋함을 드러낸다.

 

첫 번째 만남에 본 영화는 김지운 감독, 송강호 주연의 <반칙왕>이었다. 세상에 찌들어 탈출구가 절실했던 어느 평범한 직장인에게 레슬링이 펼쳐지는 링은 주인공에게 마치 판타지 같은 세계였다. 함께 웃고 마냥 즐거워했던 2시간의 블랙코미디가 끝난 후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며 발길을 재촉했다. 처음 이곳에서 만나 서로 마주했던 그날 우리 둘의 표정은 어렴풋하게 남아있지만 서서히 먼지가 되어 흩어져가고 있다. 그래도 첫 만남의 기록이 서울극장이라는 명확한 새김은 머릿속에 온전하다.

 

시간이 흐른 뒤 친구들과 자주 이곳을 찾았다. 근처에 있는 영어학원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였을 뿐, 피맛골 골목을 지나와 박스오피스에 올라온 영화들을 보곤 했다. 어느 날 굳게 다짐하고 공포 영화를 골라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향했다. 커플들 사이를 비집고 가운데에 앉아 팝콘과 콜라만 연신 입으로 향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무서운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남자가 여자를 쳐다본다.

 

"괜찮아? 무섭지?"

 

정작 본인은 무서운 장면을 회피하는 듯했다. 그러던 순간 암전이 되면서 안내 방송이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종일 긴장에 휩싸였는데 영화에서 터져 나오는 공포감이 현장감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기술적 해프닝이었지만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백 편의 영화를 봤지만 처음 겪었던 일이라 기억에 생생하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영화가 끝났다. 어둑해진 극장 앞에 포장마차들이 줄을 지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영화 무섭더라. 안 무서운 척 연기하지 마!!"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 기말고사 어쩌냐. 그게 더 무섭다"

 

소주 한잔 기울이며 영화 이야기는 커녕 앞으로 닥칠 시험을 걱정했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은 2003년 기말고사를 앞둔 6월 어느 날 서울극장에서 본 공포영화였다.

 

언젠가 나 홀로 이곳을 찾아온 적이 있다. 홀로 관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는 그 시간이 영화에 가장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 바로 행동에 옮겼다.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한적한 관객석이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웠지만 한편으론 쓸쓸해진 듯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말을 잃은 채 살아가는 주인공 폴.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해 차를 마시고 마들렌을 먹으며 과거의 상처와 추억을 떠올린다.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낼 때마다 무의식 속에 존재하던 진실들을 보며 관객들 역시 주인공 폴에 이입된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아빠가 된 폴은 자신의 아이를 보며 '아빠'라고 말한다. 2013년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은 내가 10년 전 <장화, 홍련>을 보던 그 공간 속에서 상영되었다. 영화가 끝난 후 불이 켜졌다. 출구를 바라보니 나이 드신 노인분들만 눈에 보였다.

 

서울극장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 조각들은 천차만별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시네마 천국'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꽤 오랜 시간 이 공간과 함께 했으니 말이다. 종로 거리에 뿌리박은 영화의 유산들은 서울극장을 비롯해 단성사와 피카디리, 명보극장, 스카라 등이 있지만 서서히 변화를 맞이했다. 서울극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단성사는 이름만 남았고 피카디리는 CGV로 탈바꿈 한지 오래다. 점차 대형 프랜차이즈 멀티플렉스로 향하는 영화 관람객들은 서서히 이곳을 찾지 않기 시작했다. 복합문화시설이라는 것이 주는 동선의 편안함, 그게 무엇이든 쉽게 손에 닿는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오징어의 구수한 냄새는 온데간데없이 바람에 휘날려 사라졌고 서울극장 앞에 장사진을 이루던 북적거림은 또 다른 곳으로 흩어져갔다. 영화관 뒤편 골목길에는 시간이 멈춘 듯 휴지조각들만 나부끼며 한적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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