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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나와 함께한 건축이야기 공모전

서울의 얼굴이 되는 다양한 건축물과 거기에 얽힌 우리들의 여러 이야기를 발굴하는 시민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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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대상

고래 배 속에 삽니다.

에세이   |   이은지

ㄱ자 모양의 집 구조를 따라 천장 한가운데로 척추처럼 길게 이어지는 종보와 그 양쪽으로 갈비뼈처럼 뻗어있는 서까래. 최대한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지난 일 년 반, 우리 집 천장을 보고 있노라면 난 고래 배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상량문에 조선 개국 539년(1930년)에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 나이 많은 고래는 올해로 91년째 여기 사는 사람들을 배 속에 품고 쉬게 하며 이곳 북촌 마을의 변화를 지켜봐 왔으리라.

상량문의 다른 쪽 면엔 龜 海 龍 (거북, 바다, 용)이 쓰여 있는데 이는 모두 물과 관련된 것들로 방화(防火)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더욱 고래같이 느껴진다. 오래된 이 집이 우리의 신혼집이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서촌 작은 술집 옆 테이블 손님으로 만나 경복궁 일대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열렬히 사랑을 나누던 우리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준비의 첫 번째는 함께 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평소 대중교통 이동이 잦은 내 상황을 고려해 지하철역 근처 전셋집 매물을 보러 다녔지만 맘에 드는 집은 나타나지 않았다. 머리도 식힐 겸 계동길을 걷는데 부동산에 붙은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옥 매매. 원서동. 건축 00㎡, 토지 00㎡. 한옥 수리 지원금 가능. 00만원>

처음 집을 보러 왔던 무더웠던 여름날, 언덕길 중턱에 있는 집에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들어섰다. 볕 좋은 마당에 걸린 빨래 틈 사이로 보이는 툇마루에 초등학생쯤 보이는 두 딸과 부부 그리고 순해 보이는 덩치 큰 백구가 둘러앉아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우리의 신혼을 여기서 시작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별다른 욕심 없이 도배 장판이나 하고 들어가 살려고 했으나 먼저 계시던 분들의 살림살이가 빠져나가 온기가 없어진 빈집 곳곳엔 곰팡이 핀 벽과 주저앉은 부엌 서랍장, 썩은 화장실 문 등 단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랑은 이 낡고 허름한 곳에 나를 데리고 들어오고 싶지 않다고 했고 이미 집 구하는데 예산을 초과해버린 우리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아무것도 몰랐기에 용감하게 직접 수리를 하기로 했다.

한옥이라고는 했지만 열효율 때문인지 대들보가 있는 거실 천장 딱 두 쪽만 서까래가 보이게 열려있고 나머지 공간들은 닫힌 천장이었다. 거기에 4개의 방은 성인 한둘이 대자로 누우면 꽉 찰 정도의 작은 크기로 그나마도 화장실에 가려면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와 거실로 이동해야 했다.

이왕 한옥에 사는 거 답답한 천장을 터 서까래를 드러나게 하면 개방감도 있고 원래의 모습도 살릴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단둘인 우리에게 너무 많은 작은 방들은 필요하지 않았기에 천장과 내벽을 모두 철거하기로 했다. 내벽이 사라지면 집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관련 서적을 찾아보니 한옥은 기둥이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구조라 괜찮다고 했다. 선조들의 건축 기술이 실로 놀라웠다.


언제부터 닫혀 있었던 걸까?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인 묵은 흙먼지가 치켜든 얼굴 위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그렇게 천장을 전부 뜯어냈다. 예상보다 더 낡고 성한 데 없는 폐허 같은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용감무쌍하게 맨몸으로 덤빈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가득했던 그 겨울은 참으로 고행길이었다. 벽돌로 된 내벽은 뿌레카(브레이커)를 대여해와 벽 곳곳에 구멍을 뚫은 뒤 발로 차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없앴고, 메꾸면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천장 복원에 걸린 시간만 꼬박 두 달. 이사 들어오는 날도 자정 넘어까지 화장실 타일을 붙이고 귀가해 밤새 이삿짐을 쌌고, 싱크대도 조명등도 없던 집에 들어와 살면서 계속 하나씩 완성해 갔다.


집에 들어온 시기와 맞물려 코로나19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되살린 이 아늑하고 포근한 고래 배 속에서 사계절을 보냈고 또 새로운 여름이 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래 척추를 따라 거실로 나가며 차례로 창호문을 열어 집에 빛을 들인다. 두 달 전 안방 벽 틈새에서 구조해 식구가 된 새끼고양이가 기지개를 켜고 따라온다. 어떠한 인연에 우리는 서로 만나 이 집을 수리해 들어와 살게 되었을까? 긴 잠이 지겨워진 고래가 우릴 부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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