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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했던 나의 대학동고시촌 대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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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물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1517-14 / 서울특별시 관악구 대학4길 9번지 203호

◆ 불행했던 나의 대학동고시촌 대학생활
촌에서만 자라왔던 나에게 대학교 진학으로 오게 된 서울은 그야말로 꿈의 도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낭만적인 대학생활은 그저 서울에 집이 있는 부유한 친구들의 전유물이었고, 학비에 허덕이는 나에게 서울의 내 집은 그저 한낱 4평짜리 고시방 이었다. 서울이 나에게 곁을 내어준 곳은 4평짜리였지만 난 그마저도 감사했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기숙사에선 신입생들에게 자리를 내주길 바랬고, 우린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그렇게 내몰린 곳은 학교 앞의 고시촌이었다. 그마저도 복비를 끼지 않고 구하겠다며 그 추운 겨울, 난 30곳이 넘는 집을 둘러보았다. 그럼에도 집을 쉽사리 구할 수 없었던건 보증금 100만원이 다였던 내 통장이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시촌의 이곳저곳은 걸으며 집을 찾아다녔던 내가 불쌍했던 건지 아니면 돈을 벌려고 말을 걸어오신 건지 모르겠지만 대학동 녹두거리 행복 부동산아저씨가 다가왔다. 그가 내던 부산사투리의 음성이 그를 곧바로 신뢰하게 만들었고, 아저씨 또한 나의 처지를 바라보곤 아주 작지만 깔끔한 싼방을 보여주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불편한 다리의 아저씨였지만 반지하는 살아봐서 아는데 불편하다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계단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셨다. 복비도 필요없다며 학생은 똑똑할테니 얼른 취직해서 이동네를 떠나길 바란다고 신신당부 하셨다. 그는 20년전 사시준비를 하며 들어왔던 이동네의 반지하삶의 기억을 읊으며, 지금은 그 건물 3층에 살아 행복하다며 웃으셨다. 고시촌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아저씨를 종종 마주쳤다. 아저씨는 매번 나를 알아보시곤 서울생활에 대해 충고와 격려를 해주셨다. 많이 되지 않는 부동산 직원 월급에 고시촌 뷔폐에서 밥을 사주시기도 하셨다. 언젠가 서울에서 만났던 감사한 사람들을 생각한적이 있다. 학비와 생활비를 알바를 뛰며 보태던 바쁜 인생에 회의감이 너무 들어 그날은 집 앞 하천에 맥주를 사들고 나갔다. 똥냄새가 그윽하던 하수구 근처언저리에 앉아 농구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내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이곳을 꼭 벗어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버틸만했던 고시촌 생활은 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고시촌 생활의 첫날 부동산직원 아저씨를 보낸후 난 75살이라는 노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아줌마와 녹두거리 어느 중간쯤 한 빌라의 2층방을 월 37만원에 계약을 했다. 아줌마의 첫째아들은 47살이었는데 아빠와 3살차이도 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아줌마라 부르라며 전화번호를 적어주셨다. 내가 살 방은 햇빛도 잘들고 그 전에 살았던 학생들이 모두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학생이 운이 좋아 들어온거라고 하셨다. 아줌마의 말이 떠나가기도 전에 내다본 창밖은 노을지며 주택가 사이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서울에서 마주한 내고향 촌동네의 모습은 이동네에서의 시작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
 학교를 오고가며 매일매일 걷는 고시촌 거리는 신성초등학교앞 대로에서 갑자기 좁은 거리로 분화되고 있었다. 처음 몇주는 다른골목으로 들어가 몇바퀴를 돈 후에나 집을 찾아오기도 했고, 또 몇주는 여러 주택들을 구경했다. 내가 걸은바로 느낀 대학동은 학생들, 취준생들 그리고 주택가로 구성되어있었다. 대로에서 멀리있는 뒤쪽의 주택가에는 난닝구만 입고 돌아다니는 할아버지들이 연신 담배를 뿜어댔고 그 앞쪽의 술집과 맥주집은 영업이 종료될만한 새벽시간에도 반짝였다. 취준생들은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스터디를 하기에도 바빴고 내가 자주갔던 도시락집과 가성비좋은 편의점은 새벽시간에도 많은이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그중 우리집은 대로쪽 도시락집과 가까워서 가장 좋았다. 멸치볶음을 좋아하지 않던 내입맛을 어떻게 간파하셨는지 아주머니는 항상 멸치볶음대신 볶음김치를 넣어주셨다. 학교를 마치고 포장된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향하던 길목에는 점박이 고양이가 있었다. 그 녀석은 어떻게 삶을 잘 연맹해가는지 우리집 옆 빌라사람들이 밥을 잘 챙겨주는 모양이었다. 나를 보면 꼬리를 살랑 흔들던 그모습이 참 귀여웠다. 빌라사이는 고양이들만 들어갈수 있는 틈으로 가깝게 붙어있었는데 고양이 가족들이 밤마다 울어대서 시끄럽긴 했지만 빌라사람들을 가깝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우리 옆빌라 아저씨방은 내방창문을 열면 마주보는 자리에 있었는데 험상궂은 모습에 환기도 되지 않는 방 창문을 닫고 며칠을 살기도 했다. 어느날 아저씨가 담배피러 나와서 고양이를 보고 사진을 찍어대며 흐뭇해 하시는 면모를 마주하곤 아저씨방과 내방은 허울없이 지내게 되었다. 월급을 받으신 날이면 거하게 마시고 인사도 먼저 해주시곤 했다. 
 우리빌라는 되게 작은편에 속했지만 가장 부유해 보이는 빌라였다. 빌라앞 문은 금색으로 도배된 그리스 양식의 철문이고 그 사이에는 아줌마같은 할머니가 아끼는 장미가 데코되어있었다. 그리고 가장 부유한 집같이 느껴졌던 이유는 첫째아들이 모는 차가 포르쉐였는데 학생들이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비싼차라는걸 알게되었다. 첫째아들은 우리아빠와 2살정도 차이가 나는데 머리가 까져서인지 집주인아줌마가 동안이어서인지 주인아저씨인줄 알았다. 전직 삼성맨에 사업가인 아저씨는 항상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8시가 되면 출근하고 오후 5시가 되기전에 퇴근을 했다. 근엄해 보이던 아저씨는 5층에 살았는데 퇴근하고 차를 세운 후 오늘저녁이 뭐냐며 빌라를 향해 소리를 쳤다. 창문으로 내다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다. 희한하게도 어느순간 아줌마는 고개를 빼꼼내밀고 된장찌개라고 소리를 치셨다. 저녁투정하던 아저씨가 내가 생각하던 이미지랑 달라 참 특이하기도 했지만, 매번 주는대로 먹어라며 뭐라하는 아주머니도 신기했다. 그중 집주인 아주머니는 내가 본 사람중에 가장 특이한 사람이었다. 아줌마 얼굴의 할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꽃에 물을주고 바닥을 쓸었다. 그리곤 우당탕 빌라계단을 오르셨다. 그 소리가 하도 울려서 5시에는 매번 꿈을 꿨던 것 같다. 아줌마는 생각보다 돈에 민감한 편이었고, 옆집 빌라 주인 아줌마랑 월세 담합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월세를 해결하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셔서 다른집보다 월세를 싸게 해주셨다. 결론적으로 아줌마는 좋으신 분이었다. 
  내 고시촌의 삶은 취업과 동시에 끝이났다.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으며 서울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월세방을 찾게 되었지만, 지방은 싸고 질도 좋을뿐더러 월급을 받는 나는 씀씀이 또한 커져 크게 고민 없이 구할 수 있었다. 바쁜 사원 생활중 월세를 계좌로 보내다 집주인이라 저장 되어있는곳으로 보냈는데 알고보니 서울 할머니 아줌마였다. 부랴부랴 연락을 하게 됐고, 아줌마는 젊은 사람이 그런 실수를 하냐고 핀잔을 주셨다. 너무 죄송하기도 했지만 학생이 취직된건 우리집에 살았기 때문이라는 아줌마 말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담배냄새와 하수구냄새로 가득했던 고시촌동네의 우리 빌라가 이제는 그리워하는 내가 웃겼기 때문이다. 서울생활이 반짝이지만은 않았지만 촌사람인 내가 잘 지낼 수 있었던건 정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서울답지 않은 익숙한 모습의 우리동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번 찾아가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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