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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낡아서 더 사람냄새가 두드러지는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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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물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인근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인근

◆ 신림동, 낡아서 더 사람냄새가 두드러지는 이곳
“유미야~ 오늘 신림동 갈까?”

어릴 적 나에게 ‘신림동’은 ‘외할머니 집’과 동일한 말이었다. 엄마 따라 꼬박꼬박 신림동에 갔었음에도,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릴 적엔 지리적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신림동의 위치가 심지어 ‘서울’인 줄도 몰랐다. 외할머니가 건강문제로 그곳을 떠나신 뒤, 신림동은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외할머니가 아니고서는 갈 일이 없었던 동네였으니까.

그러다가 최근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새삼 '신림동'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는데, 바로 '재개발'을 앞둔 지역으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이번주에 투자 설명회 열린대”

"그동네 프리미엄이 벌써 얼마래“

"지금이라도 들어가야하지 않을까?“

"에이.. 그럴바엔 거기보다는 OO가 낫지“

신림동은 ‘신림재정비촉진지구’ 혹은 ‘신림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1,2,3구역으로 나눠져 재정비되는 이곳은, 빠른 곳은 연말께 이주가 진행된다. 꼬불꼬불 골목길은 곧 거대한 포크레인에 밀려 잘 정비된 아파트 타운으로 변신할 것이다. 이런 변신의 과정에서 '돈'이 오고 간다.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그 돈 때문에 떠나간다.

재개발 지역에 가면, 지도를 손에 들고 양산을 쓴 무리가 누군가의 인솔을 받으며 지역을 둘러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킁킁- 돈 냄새가 물씬 나는 이곳에 온 외지인들이다. 낡음을 숨기고자 애써 그려놓은 골목길 담벼락 벽화 옆, 행인들 쉬어가라 내어놓은 낡은 의자가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분명 환경이 개선되는 좋은(?) 일인데도, 다니다보면 쓸쓸해진다. 아직도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무허가건물이 밀집된 이곳도 ‘뚜껑’이라는 이름으로 수 억에 거래가 된다.

연말이면 공가임을 알리는 '노란 딱지'가 여기저기 붙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있는 가재도구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겠지. 바로 엇그제까지도 사람들이 복닥대던 이 공간이 한순간에 휑-해 질 수 있다 생각하니, 문득 허무함이 밀려온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이때만큼은 거주자 혹은 여행자의 느낌으로 골목길 구석구석의 숨은 스팟들을 찾아본다. 19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고, 추억이 있었다.

이제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새 집에서 살고 싶을 법 한데- 왜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살아온 분들이 재개발을 반대하는 걸까 궁금했었다. '이주비 더 받아내려고 그러나?' 단순히 생각했었는데, 최근 비슷한 배경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에서 50년간 그 동네에 살았다는 슈퍼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고, 나의 속물적인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늙은 사람이 자기 고향을, 살던 곳을 떠나면 그만큼 생명이 단축이 돼. 젊은 사람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에너지로 살지 몰라도, 우리는 아니야. 그게 조금 아쉽지.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 다만 집값을 현 시가로 쳐주면 괜찮은데. 그게 안되니까. 많은 피해가 있지. 그게 아쉬워. 그래도 여기서 잘 살았어. 고마워” - <이문동 블루스> 111쪽

그러고보니 외할머니도 그랬다. 팔순이 훌쩍 넘어 집을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인근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는데, 그때부터 부쩍 기력이 없어지셨다. 그때 어른들이 그랬다. 아끼던 물건을 하나 잃어버려도 몸이 아프다고. 수십년 째 살아온 이 동네는, 시간의 흐름만큼 할머니를 성장시켜준 에너지의 일부였을 것이다.

어른이 된 내가 다시 신림동을 찾았지만, 옛날 할머니 집이 어딘지 찾을 수가 없다. 엄마에게 물어물어 ‘여기 어드메’라는 집을 찾긴 했는데, 어릴적 기억과 달라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도 그 자리에 높은 아파트들이 우뚝 들어서면, 아예 ‘여기 어드메’의 느낌도 없어지겠지. 나도 이렇게 아쉬운데, 할머니가 지금 살아계시다면 어떤 느낌이셨을까. 추억의 장소가 소멸된다는 것은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올 지 모르겠다. 내 기억의 한 부분이 한순간에 싹둑 버려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빛나고 있는 곳곳의 숨은 명소들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겠다는 어떤 사명감이다. 좁은 골목에 있어서 더 특별한 가게들, 그리고 그 속의 소박한 사람들, 그리고 화려한 조경을 갖춘 높은 아파트가 아닌, 낮아서 더 옹기종기 정겨운 집들. 훗날 재개발이 완료되어 수십 층 아파트로 탈바꿈하더라도, 옛날 이곳에는 아기자기한 빨강초록 지붕 주택들과 골목, 그리고 시시콜콜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지.


낡아서 못 살 동네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그래서 더 사람냄새가 두드러지는 곳이다. 서울의 역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간 이곳. 나는 여전히 외할머니가 쪄준 옥수수 냄새와 ‘깐돌이’가 꼬리를 흔들던 따뜻한 곳으로 이곳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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