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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사유하는 성수의 미학

본문

◆ 건축물주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2가 322-4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이로14길 14

◆두 발로 사유하는 성수의 미학
성수역 3번 출구로 나와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카페거리로 향한다. 천천히 성수동의 골목을 거닐며 멋지고 세련된 카페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친다. 평소 같으면 그저 유명한 곳을 골라 들어갔을 터인데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다. 갑작스레 나의 이목을 끄는 간판들이 어색해지고 잠시 엉뚱한 생각에 잠긴다. 서울은 과연 어떤 곳일까? 이 도시는 내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 걸까? 내가 속해 있는 이 사회가 표방하고자 하는 이상적 지향점은 어디인가를 물으며, 두 발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를 표류한다.

나는 철저한 개인주의가 우리 삶의 행복을 배가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적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개인들이 소외되거나 고립되지 않고 결합과 연대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사회이다. 보다 성숙한 개인주의는 건강한 공동체의 구성에 힘쓰려는 개인을 옹호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관념은 반드시 물질화되어 현실세계로 뿌리내려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난 이것이 물리적으로 표현된 공간을 찾아 헤맨다. 켜켜이 쌓여있는 남의 집, 남의 땅을 지나 오롯이 ‘시민’의 이름으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그 곳은 바로 우리 도심 속 허파와 같은 ‘열린 공간’이다. 열린 공간이란 말 그대로 사람들의 왕래가 자유롭고 다양한 기능과 용도를 가진 유연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의 존재목적은 사회적으로는 사람들 간의 교류를 증진시키고 지나친 개인주의 및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건전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함이고, 경제적으로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홍보 및 소비 효과일 것이다. 모든 것이 철저히 사유화되고 경계 지어진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에게 상생과 소통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특별한 공간인 것이다.

이 거대한 빌딩 숲 속에서 소외된 개인이 아닌 건강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휴먼스케일을 가볍게 부숴버린 이 압도적 스케일의 도시에서는 우리가 이 유기체의 일부라는 것을 체감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내 주위의 환경이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분리된 채 살아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행복할 수 없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고 했다. 즉, 나와 공간은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며 건축물은 우리에게 특정한 생활양식을 장려하고 더 나아가서는 가치관의 형성까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건축물은 우리게 어떻게 살아야할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을 건넨다. 원룸은 혼자 살라 말하고, 아파트는 높이 살라 말하며, 주택은 꽃을 가꾸고 개를 키워보는 건 어떠냐고 나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나에게 도시의 일부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을 건네는 공간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열린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이 풍성해질 때 비로소 우리의 도시는 활기가 넘치고 행복이 피어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여러 골목을 지나 낯선 공원에 다다랐다. 구두테마공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곳은 과거 삼익악기 공장이 있던 곳에 주민 휴식 공간 및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사실 지금이야 성수동하면 카페가 연상되지만 원래 이곳은 수제화로 유명한 동네였다. 지금도 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 구두 조형물과 장인의 아우라를 풍기는 조그만 수제화 가게들이 모인 수제화 거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곳 또한 세월이 흐르며 새로운 산업구조로 재편되었고 현재는 오래된 기존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개업한 카페, 갤러리, 펍 등이 주요산업이다. 끊임없는 변화의 굴레 속에서 지역정체성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보존하고 기억하려는 이런 기념비적 공간의 유무는 그 동네의 풍성함을 결정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수동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호흡하는 연속성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공원을 지나 다시 성수동의 부산스런 골목길로 발걸음을 돌린다. 여전히 기계음을 내뿜는 공장들과 오래된 철물점, 문구점 등 동네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소박한 공간들과 함께 각각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을 뽐내는 카페들이 이곳저곳 늘어져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곳들은 모두 저마다의 거대한 대문을 굳게 닫고 있다. 과거 대형 자재들이 드나들었을 공장의 두꺼운 출입문은 이제 대형 카페의 이색적인 수문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개방적 공간이라기보다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와 유행을 따르고 소비를 하라고 부추기는 유혹의 공간이다. 물론 이 유혹들이 너무나 매력적이기에 지금의 성수가 탄생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른 곳을 찾고 싶다.

그렇게 한참을 더 걷다보니 골목 저 편에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적벽돌의 건물 위로 ‘성수연방’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서보니 커다란 상가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앉아있는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어수선한 골목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독립된 세계인 동시에 완전히 시원하게 자신을 열어놓고 있다. 드디어 찾은 것 같다. 이곳은 아무런 장벽 없이 나에게 그 속살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 마치 어서 들어와 마음껏 휘젓고 다니라는 듯이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독특하다. 커다란 중정을 두고 옆, 뒤 삼면을 벽돌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며 중정의 중심에는 SNS 인증샷을 저격한 듯 보이는 감각적인 파빌리온이 들어서있고 그 주위로 자연스럽게 야외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다. 아직 이 건물의 성격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흥미를 끈다. 얼핏 인사동의 쌈지길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스케일면으로 보나 정서적 분위기로 보나 훨씬 소박하고 차분하며 안정감을 준다.

건축적으로 보면 이 건물은 땅의 중심을 비우고 건물의 주요 기능들을 모두 바깥쪽으로 배치했다. 이렇게 됐을 때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실내 면적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건물을 위로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건물이 높아지면서 중정에서 보았을 때 외부 환경이 시각적으로 차단되어 전체적으로 내향성을 가지게 된다. 이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음과 동시에 감각적으로 닫혀있는 이중성의 공간이다.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중정이라 할 수 있는데, 벽돌 특유의 질감과 감각적인 조경 그리고 박공지붕의 파빌리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그 멋을 더한다.

성수의 다른 주요 명소들과 마찬가지로 성수연방 또한 과거 화학 공장이었던 곳을 리모델링하여 탄생했다. 과거 서양의 장인 조합 형태인 길드에서 그 개념을 착안하여 각자의 분야에서 특별한 개성과 능력을 가진 스몰브랜드들이 모인 복합문화공간이다. 이들은 이곳이 단순한 상품판매의 공간이 아닌 제조, 유통, 판매 등 각 분야별 구성원 모두가 가치 공유 및 관계 구축에 힘쓸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되기를 지향한다. 실제 입주하고 있는 가게들을 살펴보면 이들의 이상적 지향점을 체감할 수 있다. 가전제품 편집샵, 식료품점, 카페, 서점, 카라멜팩토리 등 다양한 분야의 상업들이 공존하는데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성수연방이라는 브랜드의 이름으로 획일화하려는 동일성의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공간 구성에 유기적으로 흩어져있다. 이처럼 획일적 구성과 통제에서 벗어난 공간은 외부인에게 더욱 호의적이기 마련이다. 이곳은 커피 한 잔 사지 않고도 모든 곳을 배회할 수 있다.

성수동은 과거와 현재, 생산과 소비,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동네다. 성수동 그 특유의 분위기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일 테고, 나 또한 그래서 성수동을 걷는다. 하지만 도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두 흥망성쇠의 길을 걷는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90년대 최고의 소비문화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관광객들 몇몇만 보이는 한산한 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이 급격하게 몰리고 갑작스런 인기를 얻은 동네는 그만큼 순식간에 쇠퇴할 위험이 있다. 성수동을 단순한 유행에서 벗어나 보다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 상업과 가게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보다 꾸준하고 유연한 공간 창출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공동체 구성에 이바지하는 열린 공간이라면 일석이조인 셈이다.

나는 오늘 성수를 걸으며 건축을 만나고 사람을 만났다. 이 길의 끝에서 성수연방을 만났고 그 곳은 벽을 허물고 자신을 열어 나를 맞이했다. 건축적으로 벽은 공간의 단절을 의미하고, 공간적 분리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분리를 야기하기에 우리는 때로 열려있는 공공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서울의 아름다움은 나와 함께하는 ‘건축’을 넘어 나와 함께하는 ‘사람’에 있다. 우리 삶에 소중한 가치를 되새겨주는 이러한 공간을 통해 우리 사는 서울에 풍요로움과 넉넉함, 행복이 깃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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