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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 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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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물주소
서울 마포구 합정동 100-1 / 서울 마포구 토정로 6

◆ 합정동 강변에서
그 할머니는 마포구 합정동의 옛 이름이 덜머리라고 하셨다.
‘리’ 는 마을 里라고 강조하신다. 나는 ‘들머리’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교동, 서교동의 논과 밭을 지나  한강 물길 앞에 머리를 내민 들판의 끝머리쯤이려니 했다. 우리는 남대문 시장 팥 칼국수 집에서 그 할머니를 만났다. 그 집은 포장마차처럼 좁고 손님은 많았다. 할 수 없이 엉덩이를 밀어 서로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 쇼핑하다 지친 사람들이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떡볶이나 팥 칼국수 같은 것을 먹었다. 우리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 할머니는 바로 우리 옆에 앉아계셨다.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우리를 알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건네 오셨다. 나는 엷은 방어막을 치고 그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서울이라는 곳에서 이유 없는 친숙함은 부담스럽다. 할머니는 우리더러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다. 마포 합정동에서 왔다 하니 할머니 얼굴이 활짝 피어난다. 당신의 고향도 합정동이라고 하셨다. 원조 서울내기라고? 당시 서울 인구는 지금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합정동 사람이라니...우리도 미소를 지었지만 방어막은 한 겹 더 둘렀다. 특별한 우연은 조심스럽다. 이야기를 시작하실 때 할머니는 이미 팥 칼국수 절반 정도를 드신 상태였다.

“어릴 적에 오빠들하고 모래사장에서 조개를 잡기도 했지”

지금 합정동 강가에 모래 톱 같은 것은 없다. 강변을 콘크리트로 발라버리고 고수부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의지를 따라 한강은 수로처럼 변했다. 합정동 강변에서 강물은  쉬지 않는다. 오로지 목적지인 바다로 바쁘게 흘러갈 뿐이다. 그런 곳에서 강물은 허리를 풀고 모래를 내려놓을 수 없다. 조개가 숨어 짝을 짓고 살아갈 은신처도 당연히 만들 수가 없다.  이제는 선수복장을 한 라이더들이 달리고 잔디 밭 위로 젊은 연인들이 몰려드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맑은 강물에 민물조개 뻐끔거리는 모래사장이 그 아래 있었단다. 현재의 모습에 익숙한 우리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조금 생소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오빠들과 뛰놀며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반짝이는 물결과 하얀 모래가 환영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햇볕아래 멱을 감고 물놀이 하며 장난 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아내와 나는 뜨끈한 팥죽 속에 담긴 국수를 열심히 건져 먹었다.

“6.25가 나고 겨울에 강이 꽁꽁 얼었어. 그래서 얼어붙은 강 위로 피난을 갔는데 얼마나 무섭던지...양화진에서 건너갔지. 달구지도 건너가던 생각이 나 ”

할머니는 젓가락을 든 채로 몸서리를 치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얗게 얼었지만 양화진 깊은 강은 무거운 침묵으로 어린 그녀의 심장을 짓눌렀을 것이다. 소들은 미끄러워 잘 걷지 못했다. 소가 끌고 가는 달구지 위의 짐과 올라 탄 사람의 무게는 평소보다 무거웠을 것이다. 건너는 사람들은 등짐의 무게와 전쟁의 공포로  무겁고도 느렸다. 얼음 강바닥을 건너오는 매서운 칼바람 속에 소녀는 자꾸만 미끄러져 넘어졌다. 잊을 수 없는 악몽의 시간이 느릿느릿 지났던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와 얼굴을 마주 했지만 그 눈빛은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좁고 혼잡한 팥 칼국수 집으로 할머니는 유년의 시간들을 옮겨다 놓으시는 것 같았다. 그곳에는 모래내로 이어지는 홍제천도 있고 거기 살던 물고기들과 푸르게 올라오던 봄나물들도 살아나고 있었다. 잠두봉 아래 배추를 심어먹던 텃밭들도 펼쳐지고 그 강물에서 놀던 오빠들과 검게 그을린 동네 아이들이 뛰어 와 개구리도 잡고...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의 방어막도 한 겹씩 벗어지고 있었다. 이야기 하시는 할머니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칠십 중반의 나이였지만 머리와 옷매무새가 단정하셨다. 나는 남은 팥 칼국수 국물을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떠먹기 시작했다. 고소하고 달달한 팥의 여운이 포만감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는 좀처럼 한강 하류는 얼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강바람은 미지근한 빌딩의 체온을 담고 불어온다. 봄이면 이따금 쑥을 캐러 나온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주로 아주머니들이 재미삼아 봄나물을 캐러 나오곤 한다. 아련한 봄 볕 아래서 처녀 시절의 추억을 캐러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강변에는 봄나물 보다 하얀 개망초와 붉은 양귀비, 노란 금계국 같은 꽃들이 만발 한다.  풀벌레와 나비들은 그곳을 잘 찾아오지 않는다. 강변은 도시의 정원이 되어버렸다. 아이들끼리 물장난 하는 모습도 볼 수가 없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나와 강바람을 맞으며 고수부지 공원에서 하루를 보낸다. 공포로 얼어붙은 시간을 느리게 건너던 일들은 모두 잊었다. 일렁이는 물결 속에 발바닥을 간질이는 모래를 지금 그곳에서는 상상하지 못한다. 양화대교와 강북강변 고가 위로 무심한 차량들이 밀려가고 2호선 지하철이 철교 위를 우르릉 소리를 내며 달린다. 벌거숭이 아이들이 놀던 그 자리에는 교각들이 늘어서 그늘을 만들고 수상스키는 하얗게 물살을 가르며 양화 대교 밑을 지나기도 한다. 세상은 각자의 일로 바쁘다.  잠두봉 위 절두산 성당만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한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덮어쓴 채로, 겨울에는 추위와 눈을 머리에 이고 구도자처럼 그곳을 지키고 있다. 고요히 멈추어 있는 것은 잠두봉 위의 성당뿐이다. 잠두봉 절벽은 순교자의 기도가 서려있다. 그 역사의 기억과 흔적은 거룩한 성지로 남았다. 오빠들과 민물조개를 캐던 어린 계집아이의 시간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혹시, 잠두봉 절벽 어느 돌 틈 사이에 풀씨처럼 남아있지는 않을까?

어느새 쇼핑으로 인한 피곤이 가시고 배도 든든해졌다. 그릇에 남은 것은 긁어댄 수저의 흔적  뿐이었다. 아내와 내가 그만 일어서려는데 할머니는 내용물 없는 그릇 속에 수저를 담그고 계셨다. 그리고 그것을 빼내려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떨쳐 일어서기가 죄송했다. 하지만 일정도 그렇고, 자리 나기만을 기다리며 이쪽을 쳐다보는 손님들에게도 미안스러웠다. 이래저래 할머니와 더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또한 말씀 하신다.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그 뒤로 남대문 시장 나들이는 처음이라고 , 오랜만에 혼자 나왔다고 하셨다. 물기어린 눈으로 우리를 보시며

“이것저것 좋은 구경도 많이 하고 둘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
 
할머니는 두 손으로 빈 그릇을 감싸 쥐고 계셨다. 할머니의 미소를 보면서 우리는 그 집을 나섰다. 그리고 혼잡한 쇼핑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언제 시간을 내어 절두산 성지와 망원시장, 그리고 홍제천과 홍대 앞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어쩌면 우리만이 볼 수 있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대문 시장의 인파는 외국 관광객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와 상인들의 흥정하는 몸짓과 함께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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