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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지대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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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지대의 재발견 _ 서대문구

“훈아, 할애비는 숲에 사는 거 아나?”
할아버지는 종종 스스로 자연인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시곤 했다. 부산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할아버지는, 충정로 3번가 근처에서 작은 부동산을 하셨다. 하지만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았고, 사람들의 텃세를 견뎌내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곤 하셨다. 그럴 때 마다 내가 걱정하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할애비는 자연에 산다, 마음이 편한 곳에 말이다.” 그리고는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나를 두고 먼저 하늘로 가셨다.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사진으로도 추억을 회상하기에 부족한 날. 직접 피부로 느껴야만 할 것 같은 날 말이다. 내게는 3년 전 충정아파트의 부름이 있었다. 기차를 타고 4시간이 넘게 걸려서 내리면, 꼬불꼬불 얽힌 미꾸라지 같은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충정로까지 몇 번이나 갈아타며 힘겹게 도착한다. 개찰구를 지나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할아버지가 보이는 듯하다. 하회탈처럼 환하게 웃으며 나를 보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그렇게 충정로역에서 나와 걸은 지 5분쯤 되었을까. 8차선씩이나 되는 도로를 끼고 한 편에는 거대한 빌딩이, 다른 쪽에도 드문드문 고층 아파트들이 보였다. 그런데 웬걸, 그 사이에 숲이 있는 것이었다.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께서 농담 삼아 하신 자연에 산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 누군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주변의 건물에 가려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이 곳은 숲 보다는 늪지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할아버지가 먹고 자고 했다고 생각하니 더욱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부로 들어가자, 복도에 가재도구가 나와 있었다. 옆에 나와 계시던 주민 분은 과거 건물이 잘려버려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아파트를 둘러본 나는 마치 문학작품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최인호 작가의 <타인의 방>이나 모더니즘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건물처럼 스산한 모습이었다. 충정아파트의 외관은 오히려 그것들을 압도했다.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할아버지를 만났다. 처음에는 짜증 섞인 말을 하시다가,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왔다는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라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며, 주변의 골리앗들로부터 꿋꿋이 터를 지키고 있는 다윗인 셈이다. 또한 그곳의 주민들이 보여주는 삶의 양식도 신기했다. 난간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화분을 내어 놓은 것이다. 빛이 얼마 들어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식물들은 모두 너무나도 생생한 모습으로 정성스럽게 가꾸어져있었다. 할아버지 역시 화분을 가꾸며 잎 하나에 내 생각 하나를 떠올리셨을 것이다. 더 이상 살펴보는 것은 주민 분들께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여 나는 그만 건물에서 나왔다. 옆에는 경비실처럼 보이는 작은 꽃집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할아버지를 똑 닮은 바람꽃을 한 아름 샀다. 그리곤 다시 올라가서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에 소담히 놓고 왔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다. 저 곳에 할아버지의 눈, 코, 입을 그려본다. 당신의 삶이 존재했던 녹색지대의 재발견을 가지고 나는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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