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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거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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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거리의 기억 _ 종로구

익선동에 처음 간 날은 하늘도 맑았다. 햇빛이 강해 지하철에서 내려서 바로 양산을 펴들었을 정도였다.
종로3가역 6번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면 일단 갈매기살 고기길이 나온다. 아주 좁고 바닥이 정리되지 않은 옛 골목인데, 갈매기살을 판다고 간판을 내건 가게들이 연이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나름 유명한 곳 같았다. 내가 발을 디뎠을 때는 정오가 갓 지났을 때라 문을 연 집은 없었다. 빨강과 파랑이 선명한 플라스틱 의자들이 뒤집혀서 테이블에 올라가 있었다.
익선동의 골목은 길이 굽이굽이 좁고 깊다. 이정표랄 것도 없어서 지리를 아는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헤메기가 십상이다. 지금은 가게가 많이 들어서 덜하지만 불과 3년전만 해도 온통 오래된 철제 대문과 한옥 담으로 가득차서 이 골목이 저 골목 같았다. 다행히도 동행은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의 초반을 이곳에서 지낸 어머니,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갓 바른 페인트 물감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지 어머니는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쉽게 쉽게 걸어갔다.
갈매기 고기집들을 지나 유명한 할머니 칼국수집도 지나니 그때 비로소 한옥들로 가득찬 작은 골목들이 불쑥 나타났다. 오래된 동네 치고 나무나 풀도 별로 없어 삭막하기까지 한 동네였다. 다닥다닥 붙은 한옥 담들 틈으로 하늘이 조각나서 보이고, 그나마의 하늘도 전봇대에 엉킨 전선들로 다시 조각나 있는 동네.
조금 더 걸어들어가면 이제는 유명해진 카페 하나가 나타난다. 종로구 수표로28길 33-12, 옛 지번 주소로는 익선동 166-23번지다. 우산이며 마른 꽃이며 화려한 장식들로 첫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살피면 한옥의 골조를 그대로 살려서 개조한 가게다. 드라마 도깨비에도 촬영지로 쓰였다는데, 그보다 한참 먼저 1953년생인 나의 어머니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5년 동안 살았던 집이다. 이 집에서 외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큰 이모가 시집을 갔다.
3년전에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사람 없는 카페에 슬그머니 들어가 앉았다. 놀랍게도 외갓집이 이사를 간 지 이미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한옥 자체는 그대로였다. 연한 상아색의 천막으로 마당의 위를 덮어 온실과 같았고 내부 벽을 제거하여 전반적으로 넓게 튼 공간에는 꽃이 가득했다. 아주 많이 변했지만 어머니는 서까래와 주춧돌과 디딤돌을 알아보았다.
이 집이 카페가 된 건 대체 어찌 알았느냐 물었더니 어머니는 배시시 웃는다.
    -    친구가 알려줬지.
어머니에게는 아주 오래된 친구가 몇 있다. 이곳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다. 익선동 골목에서 고등학생이었던 어머니는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쳤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집에 온 친구들에게 물 한모금 내주지 않았지만 환영받지 않았어도 친구들과 뛰며 놀았다. 어떻게 서너명이 한꺼번에 서서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좁은 골목이었는데 그래도 최고로 재미있었단다. 그 친구들 중 한명은 자녀가 모두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고, 한명은 남편과 사별했고, 한명은 뇌종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외모에 관심을 가지게 된 스물에는 한옥집 마당에서 줄넘기를 삼천개씩 해서 살을 뺐다고 한다. 고무신을 신고 뛰었다는데 재주도 좋으셨다. 지금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여 먼 거리를 걷지 못한다. 하지만 어쨌든 이 동네에 너와 함께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어머니가 웃었다.
서까래와 주춧돌도 그렇지만 디딤돌이 남아있어 반가웠다. 외할머니가 유달리 쓸고 닦고 했던 디딤돌이라서 식구들은 그 위에는 올라설 수도 없었다. 아니 신발을 벗어놓으라고 댓돌 아니야? 라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그냥 우리 엄마가 그러더라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2013년이었고 재산문제니 감정문제로 끝까지 풀지 못한 앙금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 엄마라는 단어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없었다.
가게 주인은 새로 나올 메뉴라며 레몬향이 첨가된 홍차를 한 주전자 내주었다. 물론 우리가 시킨 커피 두잔 외에는 돈을 추가로 받지 않았다. 커피보다 오히려 홍차가 더 향기로웠다. 별 대화도 없이 노닥거리다가 우리는 저렴한 칼국수를 한 그릇씩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또 오자, 너무너무 좋네.
어머니는 돌아오는 길 내내 얼굴이 발그레해서 젊어진 표정이었다. 오래된 동네, 비록 뼈대만 남았어도 그 시절 살았던 흔적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그리도 기뻤던 모양이었다. 익선동을 빠져나오면서 이야기는 그치지 않았다. 그 시절에 있었던 한복맞춤집과 떡집들과 이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이야기. 지금보다 궁핍하지만 어쩌면 더 행복했을 사람들의 이야기. 거기 섞여서 젊은 시절 어머니와 행복했던 외가의 시절이 섞여 흘러나온다. 어머니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것을 보는 나는 알 수 없이 뿌듯하고 애틋하다.
구두를 신어 걷기가 힘들었지만 지금도 어머니와 함께 익선동을 가끔 간다. 시간이 멈춰있는 듯 변하지 않았던 골목은 요새 엄청난 속도로 변한다. 무채색이던 골목골목의 얼굴이 전부 알록달록한 색을 입었다. 그러나 공간의 기억은 다채로운 얼굴 밑을 기억한다. 어머니는 여전히 그곳에서 즐거웠던 십대를 기억할 수 있고, 나는 내게 없는 기억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익선동의 골목에 가면 젊고 어린 어머니의 기억을 밟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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