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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의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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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의 카드 _ 종로구

“야아 이녀석들 또 떠들어대나! 너희 이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아나? 느그들 선배가, 저기 벽에 담쟁이 보이제 저만큼이나 명문대를 가서 명문인 학교인기라 그거 알고들은 있나 이놈 자슥들!"

순간 수업 종이 울리고 와아 소리와 함께 문 가까이의 아이들이 복도로 뛰쳐나갔다. 나는 다른 친구들 몇 명과 함께 필준이의 책상 앞으로 가 옹기종기 모였다
"자 내가 안 보고 있을 테니까 이중에 너가 제일 마음에 드는 카드를 골라 봐"
필준이는 학교서클에서 마술부를 했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배웠거나 구상해온 마술을 반 친구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곤 했었다. 고개를 돌린 필준이 앞에서 나는 카드를 고르곤 문양이 없는 쪽으로 뒤집어서 그에게 다시 주었다. 고개를 다시 앞으로 한 그가 내가 고른 카드를 넣어 다른 카드들과 한참을 섞더니 뒷면이 보이는 카드 한 장을 내게 꺼내어 주었다. "이게 네가 고른 카드 맞지?" 내가 골랐던 스페이드 에이였다. 우와 소리와 함께 나와 다른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필준이는 멋쩍은 웃음을 지며 연습한 다른 마술도 보여줄게 하고 주섬주섬 다른 소품들을 꺼내곤 했었다. 필준이는 공부를 매우 잘하고 축구에서도 제법 날렵했었다. 한마디로 우리 반에서 에이스였다. 반에서 책상도 가까웠었던 나는 그와 함께 어울리는 게 참 재밌었다.
여느 날처럼 같이 잘 놀던 와중, 학교 복도에서 사소한 장난을 치다 나와 필준이의 사이가 순식간에 틀어져 버리는 일이 생겼다. 내가 먼저 사과를 했음에도 도무지 그와 전처럼 가까워질 수가 없었고, 서먹한 그에게 나도 더 이상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내가 일진 애들에게 잘못 걸려 호되게 당할 때조차도 그는 나를 외면하였고, 결국엔 나도 그를 모른 체 하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을 하게 되었고, 다른 친구에게 필준이가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학교도 마술도 그도 잊어버린 채 사회로 나오게 되었다.

졸업한 지 1년이 좀 더 지난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새벽에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필준이가 화재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오랜만에 들은 그의 이름이었다. 의식이 없다가 회복해 며칠 만에 깨어났으니 같이 병문안을 가자는 제안이 왔다. 그와의 지난날을 떠올리며 한참을 생각하다 나는 가지 않으마 하고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어쨌든 깨어났으니 다행이고 잘 살려니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닷새가 지난 후, 나는 연락을 줬던 친구로부터 그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다시 받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날카로운 종이가 스쳐지나 가는 것을 느꼈다.
장례식장 내 그의 영정사진 앞에서 다시금 나와 그는 마주하게 되었다.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조문을 왔고 모두 수재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고 이필준이라 검게 써내려간 글씨가 한없이 눈을 먹먹하게 했다. 찾아가 보지 않고, 그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던 후회가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의 상이 다 치러지고 난 후, 금세 다른 사람들 기억과 대화 속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떠난 후부터, 나는 매년 혼자 우리학교를 방문한다. 아직도 학교건물 벽에는 스페이드 모양의 담쟁이가 지지 않고 붙어있다. 빼내지 못한 지난날의 나의 청춘과 명문학교의 한 부분 같았던 그의 모습이 머물듯이 빼곡히.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정문인가에 묻어두었다던 졸업생들의 타임캡슐에는 필준이의 빨갛고 검은 마술카드와 그에게로 보내지 못한 나의 묵은 카드 한 장이 들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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