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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들을 기리는 소중한 공간, 그리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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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들을 기리는 소중한 공간, 그리고 시간 _ 종로구

알싸한 향 냄새. 달갑지 않다. 알레르기에 재채기까지 나니까.
어제는 엄마 아빠 둘이서 온갖 전을 부치셨다. 집 안에 기름냄새가 배었다. 일찍이 조기를 굽고 나니 온 집안은 음식냄새가 진동을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양말을 신었다. 지방의 한자를 한자 한자 아빠는 다시 설명해주신다. 매번 듣는 설명이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이해할 수 없는 절차들이 오가고 마지막으로 긴 절을 한다. 옆에 동생은 아직도 잠이 덜 깨었는지 절을 하다 잠이 들었다.
우리집은 아직도 제사를 지낸다. 솔직히 피곤하다. 열심히 절을 다니시는 할머니의 문화에 맞추기 위하여, 교회에 다니는 엄마 아빠는 아직도 매 제사를 살뜰히 챙긴다. 나는 조상님께 잘 살펴보아 달라면서 매년 몇 번씩 고생하는 모순에 공감하지 못했다. 음식을 차려놓고 허공에 절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매 제사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엄마 아빠가 음식 차리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이틀 전부터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을 보면 고생하는 것 같아 속상하기 까지 하다. 왜 아직 제사를 지내는 것일까?

안국역에서 내렸다. 폭염경보가 핸드폰에서 계속 울리지만 걸어가기로 선택했다. 종묘로 들어가는 길은 대로변에서 백 미터는 떨어져있다. 종로 한복판에 이렇게 넓은 광장을 공원처럼 열어놓는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또 완전 다른 세계이다. 3개로 나뉜 대문들, 중앙에 표시된 길로 보이는 동선. 키 큰 소나무들과 작은 천원지방사상으로 만들어진 인공 호들은 더운 날씨에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돌로 표시된 동선을 따라가면 정전에 도착한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종묘의 정전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종묘는 조선시대 왕을 기리는 제단이다. 나라의 아버지인 왕의 죽음 이후, 종묘는 한 칸씩 증축되었다고 한다. 한 칸씩 증축된 공간에 왕 한 분의 제단을 추가한 것이다. 조선의 역사와 함께 자라나던 건물이다. 지금은 더 자라나지 않지만, 한 칸 한 칸에는 왕의 죽음과 역사가 깃들어 있다. 종묘의 정전이 주는 위압감, 그 울림. 숙연해진다.
이곳에는 다른 궁들과는 달리 한복을 입고 다니는 외국인이 없다. 왕과 왕비가 살던 곳이 아니니 환상을 가지고 오는 관광객이 드문 것 같다. 유교문화에 의해 죽은 사람을 기리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을 서양에서 온 관광객들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얼마나 이해할 지는 모르겠으나, 정전의 정면이 주는 울림은 공감할 것 같다. 나 역시 서양의 관광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 종묘를 보았던 21살의 건축학도는 숙연함을 느꼈지만, 여전히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공감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폭우가 내리던 날 종묘를 방문하였다. 가파른 기와의 선을 타고 빗물은 평행선으로 흘러 내리고 있었다. 아래로 떨어진 물은 땅의 돌 타일들 사이로 잔잔하게 흘러간다. 건물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만 같다. 격하게 통곡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혼자 슬픔을 이겨내려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만 같다. 곡선의 타일들 사이를 부드럽게 흐르고 있는 물을 보면 괜히 나도 슬픔이 고인다.
제사는 왕의 죽음을 기리는 곳이었다. 나라의 아버지라 불리는 왕을 잃은 나라는, 슬픔을 기리기 위해 이런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조선은 그 슬픔을 한 공간에 담아 둔 것이다. 수 많은 전란을 겪으며 힘들었지만 선조들의 시간들과 순간들을 기리기 위해서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아버지를 잃은 세자는 왕이 되며 이곳에서 눈물을 조용히 삼켰을까? 왕이 되며 함부로 울지도 못했을 테니까. 종묘에 제를 지내러 올 때마다 아버지와 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기억하지 않았을까. 그의 아버지가 그 전에 그랬듯이, 할아버지가 이전에 그랬듯이. 매 칸에 역사와 함께 슬픔도 축적된 것만 같았다.

아빠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했다. 정정하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는 누구를 위한 제사인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아빠가 매번 설명해 주었지만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종묘를 방문하며 우리에게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왕이 아니더라도 우리 가족도 역사가 있다. 아빠에게도 할아버지가 있었고, 할아버지도 할아버지가 계셨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 까지 우리가족이 있었다. 또, 내가 엄마 아빠와 보낸 따뜻한 시간이 있었던 것처럼, 엄마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내었던 따뜻한 시간이 있다. 제사는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불편한 것은 역시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여전히 제사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들더라. 향 냄새에 재채기가 나서 괴로운 것 역시 변하지 않는다. 엄마에게는 살찌고 기름진 음식 이렇게 손 많이 들여 많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매번 상을 줄이자고 한다. 하지만 시대와 동떨어진 제사를 왜 지낼까 매번 툴툴대지는 않는다. 제사의 의미가 내게는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이렇게 행복하기 까지 함께했던 시간들과 기억을 추억하고 기리는 시간이니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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