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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국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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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국수집 _ 종로구

종로6가에서 종로5가로 걸어가다보면, 신진시장통에 조그마한 국수집이 하나있다. 할머니 혼자 가게를 꾸려나가셨지만 결코 힘든 내색 한 번 하신적이 없었다. 그저 덤덤히 국수를 삶고 육수를 부어주신뒤 무심하게 계산하셨다. 어디 하나 모나지 않았지만 특별하지도 않았던, 바쁜 시장 사람들이 짬을 내 급히 먹고 갈 수 있는 딱 그런 맛을 내셨다.

20여년 전, 낙산 중턱 어딘가에서 나는 유년 시절을 보내었고, 이화동과 충신동사람들의 삶이 다 그렇듯 내 부모님도 봉제공장일을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원단시장을 나설 때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다. 거칠고 투박했던 검은색 자전거를.

유난히도 얌전하고 소심하며 활동적이지 못했던 나를 아버지는 무던히도 동대문 원단시장에 데려가셨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 역시 바쁘셨기에 겸사겸사 데리고 나오셨겠지만, 말썽없이 졸졸 잘 따라다녔기에 더욱 데리고 나오셨지 않았나 싶다. 검은색 자전거뒤에 태우시고 이화동 내리막길을 달리실때면 소심했던 나였음에도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잘 따라나섰던 결정적인 이유는 자전거가 아닌, 시장 할머니의 국수였다. 국수라는 음식이 특별하게 먹는 음식도 아니였고, 어머니 역시 음식솜씨가 상당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시장 할머니의 국수를 좋아했고, 아버지가 원단 시장을 나서시기만 바랬다.

명절에 손자가 할머니를 찾아뵈며 반기듯 나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국수집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아버지 역시 그런 모습을 보는게 흐뭇하셨는지 매번 나를 데리고 시장을 나서셨다. 너무나도 조그맣고 어렸던 나였지만 말썽없이 얌전했기에 시장 곳곳에서 이쁨을 받았고,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아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아버지를 뒤를 따라 나서기가 어려워졌다. 자연스레 국수는 잊혀졌고, 20여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따금씩 그 때의 기억들이 머리를 스쳐갔지만, ‘언젠간’이라는 핑계로 금새 지워버렸다. 시간이 지나며 추억이 조금씩 흐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전히 잊혀지는가 싶었는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신진시장을 지나갈 일이 생겼다. 20여년이 지났지만 가게가 어디쯤 있었는지 얼추 기억하고 있었는데, 정말 그 자리에 여전히 국수집이 있었다. 비록 그때의 할머니는 계시지 않았고, 내가 기억하는 가게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분명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홀린듯 자리에 앉았고, 고민없이 잔치국수를 시켰다. 시장에서 먹는 음식이 다 그렇듯 기다렸다는듯이 국수가 나왔다. 오래된 기억을 망칠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국수를 먹었고,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그 때의 국수의 맛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때 그 자리를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먹은 것은 그저 국수가 아닌 시간과 감정이 가득찬 추억이였다. 아버지 손잡고 찾던 어린 나의 추억. 그런 추억속 공간이 여전히 자리를 지켜주는것에 감사하기에, 지금의 모습이 어떤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 지금의 모습과 맛이 그때와 다르더라도 그때의 기억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준 것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셨던것처럼, 나 역시도 아들에게 국수와 같은 기억을 만들어 줄 수 있기를. 그렇게 그 날의 추억을 좀 더 또렷하게 마음에 담아 둘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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