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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 [ESSAY] 덤덤한 열정이 쌓인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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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덤덤한 열정이 쌓인 계단


홍대. 이제는 어렴풋이 서교동, 연남동부터 상수동까지 모두 감싸는 지명이 된 듯하다. 19살 끝자락에 처음 마주한 홍대라는 지역은 나에게 어려운 보드게임을 처음 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안에서도 상당히 재미있는 별명이 붙은 건물들의 집합체가 있다. 바로 소설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와 홍대의 합성어인 홍그와트이다. 나는 소위 홍그와트로 불리는 복잡한 홍대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자주 가는 길을 완벽하게 익히기도 어려웠지만 정말 복잡했던 점은 내가 몰랐던 길들을 꾸준하게 발견하며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는 루트를 생각해야 했던 점이다. 그 수많은 루트 중에서도 가장 애용했던 길이 있다면 바로 우산 없이도 비를 안 맞게 해주는 길일 것이다. 사실 비를 안 맞게 해주는 길로 알려져 있지만 미대 건물을 사용하는 나에겐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아야 하는 구간이 있었는데 바로 롱다리 계단이다. 롱다리 계단이란 이름은 아마도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구간에 긴 계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롱다리 계단에는 수많은 용도가 있는데 영상제가 진행될 때는 영상제가 펼쳐진다. 영상제가 되면 대학생들이 밤을 새고 제작한 작품들을 음료를 마시며 감상한다. 평소에는 큰 작품을 제작할 때나 넓은 공간이 필요할 때 작업실이 되어준다. 야외조각전을 준비하는 조소과 학생들은 강한 체력으로 롱다리계단에 천막을 설치하고 야외에서 며칠이고 작품을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장소를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을 알 것이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도는 흡연장소이다. 나는 비흡연자이긴 하지만 이 장소를 그렇게 무미건조한 흡연구역으로 단정짓고 싶지 않다.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부터, 무거운 마음 속 고민까지 대학생들의 우환을 내려놓게 만드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한번은 건물 안 실기실에서 흑연과 물감의 화학물질 냄새에 질려서 말 그대로 숨을 쉬러 롱다리 계단에 나온 적이 있다. 단지 그 텁텁한 나무 의자에 앉아서 계단을 이룬 수많은 붉은 갈색 벽돌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숨은 물론 마음이 편해졌다.

롱다리 계단을 에워싼 F, U, E동까지 무려 3가지 건물에 싸여 있지만 아래로 하강하는 계단과 그 사이로 높이 솟아오른 하늘은 답답한 느낌을 들게 하지 않는다. 특히 내가 입학한 해에 신설된 U동은 미술대학의 종합 강의동으로 롱다리계단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몇 개의 계단을 더 내려가느냐에 따라 2층부터 지하 2층까지 어느 층으로든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이 계단 구조는 성격이 급한 나에게 정말 큰 즐거움을 주었다. 대학에서는 여유롭게 살아보기로 결심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바쁘게 움직일 일들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해둔 계단 수를 세어가며 내가 원하는 층으로 바로 들어갔을 때는 별 것 아닌 일임에도 기분이 정말 명랑해졌다. 아마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속 대학이라는 장소를 대여섯살의 놀이터의 필터를 끼운 것 처럼 밝아지게 만들었던 통로였던 것이다.

졸업전시를 한 달 남겨둔 기온뿐 아니라 마음도 쌀쌀했던 초겨울의 일이다. 물감이 군데군데 묻은 후리스를 입고 롱다리 계단을 내려가는데 동기인 친구가 거대한 정사각형 캔버스를 마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졸업전시가 있었던 그 한 해 동안 정말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밝은 사람이었는데, 그 날만큼은 그 긍정적인 얼굴에 고심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니, 오래 고민한 탓에 시간이 촉박한 일정 안에 졸업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워낙 한 톨의 디테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챙기는 친구였기에, 쉽사리 대충 하라는 무책임한 조언조차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전공했던 회화하는 것이 사실 많은 부분 혼자서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것이었기에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작품을 옆에서 고정해주거나 받쳐주는 역할 밖에 없었다. 눈이 친구보다 세심한 편도 아니어서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는 일에도 재능이 없었다. 그렇게 친구의 일로 맡겨 두고 저녁을 먹고 한참 내 작품을 그리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큰 가로등 불빛 아래서 작업을 하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그 때의 구슬 같은 색감의 남색 하늘과 가장의 무게같은 것을 표현할 때 나올 법한 가로등 불빛은 잊지 못할 풍경이 되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5분도 있기 힘든 11월의 맞바람이 드는 롱다리 계단에서 한 겹 한 겹 그림을 그리는 동기는 나에게 한 사람이 성인으로서 온전히 져야 하는 책임이라는 것의 한 장을 가르쳐준 것 같다. 친구는 담담하게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특유희 푸근한 미소를 보여줬다.

나는 지금 미대생이라는 낭만적인 타이틀을 졸업과 함께 뒤로 하고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지만, 그 고생스러운 여러 겹의 추억들이 낭만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특히 나와 친구들이 사용했던 F동이란 건물은 겉에서는 그 어느 면도 보이지 않고 건물과 건물의 통로가 되어주던 생애 처음보는 유형의 건물이었다. 지금도 그 건물처럼 조용하고 보이지 않는 노력들을 쌓아가고 있을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9월의 시작이다. 아마 모두에게 힘들었던 이번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초겨울의 냄새가 바람에 섞여 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 때쯤 이면 나는 같이 예술에 대해 고민했던 친구의 덤덤한 열정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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