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OUL U
네티즌투표 | 로그인       서울특별시공모전 홈으로 가기
수상작 갤러리
2015 서울 아름다운 건물 찾기 2016 서울 나와 함께한 건축 이야기 2017 서울, 건축에 이야기를 더하다
2017 서울, 건축에 이야기를 더하다 수상작 E-BOOK

본문

대상 | [ESSAY] 어쩌면 우리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숙명일지도 모른다.(최정민) _ 서울 종로구 효자로 33

 

"우리 집안은 보통 집안이 아니여. 최치원이라고 신라 시대의 그 유명한 학자가 우리 조상이란 말이다. 그러니 너도 꼭 문학을 해야 한다. 알겠지?"

할아버지는 늘 나를 본인 앞에 앉게 하셨다. 책과 신문을 건네며 "사람은 읽고 써야 성장하는 법이다."라는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 입학에 실패했던 나는 방황 아닌 방황을 시작했다. 하는 일 없이 집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대체 내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선 "다른 집 손주는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갔다고 하더라." 하시면서 섭섭한 마음을 내보이셨다.

평소 책을 좋아하던 할아버지는 명절날만 되면 "저번에 내가 선물한 책은 봤니? 어떻게 생각했니?"라고 하시며 나와 책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를 나누길 바라셨다.

나는 읽지도 않은 책을 읽었다고 거짓말하며 또 다른 질문을 하실까 두려워 자리를 피하기 바빴다.

할아버지의 행동은 내게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빠는 할아버지께 "이제 질문 좀 그만 하세요."라며 내 짜증을 대신 전했다.
그리고 그 이후 할아버지는 책에 대해 일제히 말씀하지 않으셨다.


스물 한 살 무렵, 나는 서촌으로 이사를 했다. 성북동에 오래 살았던 만큼 낯선 동네에 정붙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동네와 친해지기 위해 나는 길을 나섰다. 서촌은 카페들도 즐비하고 아기자기한 건물들도 있어 산책하기 좋은 동네였다.

그렇게 나는 동네 산책을 즐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안여관'을 발견했다.


'이곳에 무슨 여관이 있어. 엄청 낡았는데 사람들이 이용은 하나?'


그저 낡은 숙박시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나는 보안여관 앞을 기웃거렸다. 경복궁 돌담 성벽과 마주해있는 그곳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케케묵은 벽지들이 보였다.

알고 보니 보안여관은 한국 근대문학의 중요발상지였고, 문학동인지 '시인부락' 창간 서정주, 김동리, 김달진 등의 문인들이 기거했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전시 및 퍼포먼스 개최 등으로 생활밀착형 문화예술생산지로 자리한단다.


들어서자마자 2층으로 가는 계단의 웅장함과 갈색빛 나무 건물 조화의 소박함을 동시에 느꼈다.

목울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쿵쾅 뛰기도 했다. 설렘을 느꼈다.

그 이후 보안여관 속 문인들이 남기고 간 글에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점점 문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동네 문예창작학원에 등록해 몇 개월을 다녔다. 문예창작과 전공으로 대학입학도 했다. 

 

입학 소식에 할아버지는

"그래! 우리 집은 문학을 하는 집안이라고 했잖니. 이제 신춘문예 등단하는 거냐?"

라고 물으셨다.
"에이, 할아버지. 제가 어떻게 해요."
"글로 대학 간 우리 손녀인데 당연히 등단도 하는 거지!"
"알았어요. 할아버지. 꼭 등단할게요."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안여관을 지나갈 때마다
"신춘문예 등단하는 거지?"라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종종 들려오는 듯하다.


가끔 보안여관을 찾아가서 자극을 받으며 다시 마음도 굳건하게 다지곤 한다.
보안여관은 나에게 커다란 건물의 의미를 넘어 동기부여이자 친구이자 꿈이자 할아버지와의 약속이다. 

 

또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 

다음글
공모전 운영사무국 0505-300-5117
공모전 운영 사무국 : 06154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460 금척타워 B1 Tel : 0505-300-5117 사업자등록번호 : 214-88-77260
Copyright 2018 서울아름다운건물찾기공모전. ALL RIGHTS RESERVED..
페이스북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