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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 [ESSAY] 특별한 90%

특별한 90%(유동훈) _ 서울 동대문구 이문로9길 84

 

서울은 나에게 우주였다.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있는 환상의 도시.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수험생활의 목표도 서울살이가 되었고 이 악물고 공부해 성공한 후 부모님을 설득해 학교 앞 작은 방을 얻었다.

청춘은 상상과 많이 달랐다. 속빈강정.

그것이 나의 스무 살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사람들과 화려한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고 특히 약속을 끝내고 홀로 방에 들어왔을 때 느끼는 외로움은 날 초라하게 만들었다.


홀로 우주에 남겨진 조난자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난 방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연히 자취방 근처의 작은 맨션 단지에 들어갔다.
낡고 평범한 건물은 오랜 친구처럼 처음 가는 곳임에도 날 반겨주는 듯 했다.
그곳에서 난 외톨이도 아니었고 청춘의 패배자도 아니었다.


경희맨션은 절대 특별하지 않다. 백분위로 따지자면 하위 90%에 들어갈 절대 다수.

하지만 그 평범함이 가진 힘이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마치 달처럼. 달은 구멍 투성이에 태양처럼 빛나지 않으며 토성처럼 아름다운 고리도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누구보다 아름답게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과 교감하며 위로를 준다. 

 

경희맨션이 가진 힘. 90%의 평범함이 가진 힘은 “서사”였다. 경희맨션의 낡은 현관 앞 푸른 화단.

주민 한명 한명의 마음이 더해져 화단은 어느새 작은 숲이 되어있었다.

이름 모를 풀이 자라는 플라스틱 화분부터, 어느새 2층에 닿을 정도로 큰 나무가 심어진 도자기 화분까지.

오직 주민의 애정과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창가나 복도의 가재도구들도 또한 아름다웠다.

지금은 이미 커버린 아이가 좋아했을 모빌, 수년 동안 장을 품어왔을 항아리.

무엇 하나 때 타지 않은 게 없었지만 내가 본 그 어떤 장식보다 정감이 갔다.

경희맨션은 그 곳을 거쳐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흐르는 곳. 가만히 있어도 그 이야기들이 말을 걸어온다.

화단의 나무는 자신이 처음 씨앗으로 이곳에 심어졌을 때를 재잘 거리고, 자전거는 주인 집 아들이 자신을 타고 떠났던 모험을 들려주었다.

경희맨션엔 서사가 있는 것이다.

서사가 있었기에 홀로 경희맨션 그네에 앉아 있어도 외롭지 않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경희맨션이 유명한 고층 빌딩이었다면 나는 그 공간과 어떤 교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며 수많은 마천루들이 올라갔다. 높고 아름다운 외형의 빌딩들.

한눈에 봐도 눈에 띄게 아름다운 이들은 현대사회에서의 우월함인 “자본”을 소유한 자들의 손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상위 10%의 부, 그 우월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존재하는 이 건물들은 스스로를 지역의 “랜드 마크”라고 칭하며 돈의 힘으로 그것을 널리 각인시키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가 배제된다.

돈의 힘으로 돈을 위해 지어진 건물엔 오직 욕망만이 있을 뿐 지역을 관통하는 맥락이 없다.
한옥이 모여 있는 곳의 고층 유리 빌딩은 오히려 기존의 서사를 끊어놓을 뿐이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도시적 맥락이 자본의 침입으로 붕괴되면 지역은 행정적 단위로만 존재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그 지역을 떠올릴 때 수많은 주민들의 이야기보다는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건물의 힘을 떠올린다. 

 

내가 스무 살 때 고독감을 느낀 데에는 그러한 서사의 부재가 한 몫 했을 것이다.
건축에는 개인이나 집단의 의식에 영향을 줄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을 마냥 “도시적 맥락이 사라져 버린 지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논리가 강하게 지배하는 곳이긴 하지만, 그 자본에 침식당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과 이야기가 존재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수천 개의 경희맨션이 존재할 서울,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서울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홍대, 망원, 익선. 서울의 유명 관광지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점차 주민들이 거주하는 건물들이 살아있는 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건물들이 이야기해주는 땅의 이야기, 서사에 이끌리는 것이다 .


진짜 특별한 것은 상위 10%의 아름다운 랜드 마크가 아닌 서사의 힘을 지닌 하위 90%이지 않을까. 평범한 90%의 힘.

내가 경희맨션과 그 지역에서 받았던 따뜻함과 위로는 나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했다.

세운상가가 무너지지 않고 개발되기로 결정되었듯 원래의 서사를 유지하는 건축이 계속되어 내가 사랑하는 서울이 더욱 사랑받는 도시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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