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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 [ESSAY] 젖은 날개들을 편안히 끌어안은 낙선재

젖은 날개들을 편안히 끌어안은 낙선재(박지영) _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이곳에서 자라온 나에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대도시라기보다는 그저 조금 넓은 ‘우리 동네’ 정도로 여겨지는 공간이었다.

편하고 익숙한 만큼 설레거나 새로울 것도 없는, 내가 매일을 살고 있는 곳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신비롭거나 새롭지 않다고 해서 그 의미가 모두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은 더욱 강력히 우리를 감싸곤 한다.


창덕궁 한 편에 외따로이 떨어져있는 낙선재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때마다 견학을 가던 곳이었다.

사실, 나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담임 선생님의 설명을 필두로 창덕궁을 빙 돌아보는 활동을 주로 하였기에 낙선재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 또한 다소 최근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 견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작게 자리하고 있던 이 공간의 인상만은 또렷이 남아있다.

으리으리한 궁들과는 달리 단청조차 없는 소박한 건물에 들쑥날쑥 쌓인 담은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눈에도 참 편안하고 평화로웠다. 

 

낙선재의 내부는 마치 중국이나 일본 전통 가옥처럼 동그란 중간 문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한때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일본의 젠 양식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젠 양식에서 주로 보이는 동그란 창문을 우리의 궁궐 형태에 맞게 방과 방을 이어주는 중간 문의 형태로 바꾸어 인용했는데,

이는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헌종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 동그란 문과 그것의 옆으로 보이는 작은 후원의 모습은 이곳을 그 어떤 화려한 장식 없이도 너무나 아름답고 이채롭게 만든다.

또한 뒤편에 작게 자리하고 있는 후원 역시 눈이 휘둥그레 해지게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치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 중 나의 눈길을 가장 오래도록 사로잡은 것은 위쪽의 너른 후원으로 향하는 문과 계단식 담이었다.

아직 대중에 개방되지 않은 후원을 막아선 푸른빛의 문은 마치 동화 속 엘리스가 시계 토끼를 따라 들어간 굴처럼 왠지 모를 비밀스러움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측면에 자리한 들쑥날쑥한 담을 보면 언덕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낮은 구릉 조차 품으려 했던 마음이 느껴져 웃음 짓게 된다.

분명 자유 분방하지만 어느 한 부분도 어지럽게 흩어져 있거나 거추장스럽지 않은 곳.

낙선재는고요하고 평화롭게 마음을 다독여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인생은 그리 평화롭지 못했다.

낙선재는 잘 알려져 있듯 헌종의 여인 경빈 김씨를 위해 지어진 공간이다.

그녀는 헌종의 아낌없는 총애를 받던 여인이었지만 실상은 삼간택에서 떨어져 왕비의 자리에는 절대 오를 수 없는 불운한 이였다.

관례 상 삼간택에서 떨어진 여인을 궁에 두지는 않지만 경빈 김씨는 헌종의 남다른 배려로 낙선재에서 왕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었다.

이후 이곳은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의 거처가 되어주다가 나라가 기울어가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때에는 순정효황후,

이후에는 영친왕과 그의 비인 이방자 여사 그리고 할머니가 되어 돌아온 덕혜옹주의 마지막 거처가 되었다. 

 

이곳에서 이방자 여사와 함께 가장 최근까지 생활하였던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왕족으로 태어나 귀히 자랐지만 나라의 쇠퇴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고국에 돌아오지도 못하는 등 지금의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불행을 겪었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낙선재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몸은 이미 많이 상해있었고 어여뻤던 옹주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글에서 그녀는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 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미 승하한 전하와 비전하를 볼 수도 없을 뿐더러 그토록 바랐던 조국에서의 생활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더 이상 부모도, 올바른 자신도 찾을 수 없게 된 덕혜를 낙선재는 가장 마지막까지 감싸 안아주었다.


'즐거울 락, 착할 선'으로 이루어진 공간.

한자의 겉 뜻만 보면 이곳은 즐겁고 착한 집이다.

하지만 樂(즐거울 락)에는 '편안하다'라는 속뜻이, 善(착할 선)에는 '아끼다'라는 속뜻이 담겨있다.

안타깝게도 낙선재에 기거했던 인물들은 모두 조금씩 불행한 삶을 산이들이었다.

누군가는 아무리 왕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다 해도 절대 왕비의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국을 눈앞에 두고도 평생을 타지에서 불행한 삶을 살다 다 늙어서야 그리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마다의 사연은 다 다르지만 하나 같이 이름 앞에 '비운의'라는 수식어가 붙던 이들인 것이다.

비상하리라 여겼던 꿈이 꺾이고 날개가 젖어 볼 품 없이 돌아 온 이들을 오직 낙선재만이 편안하게, 또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여러 해가 지나 이제는 낙선재도 궁의 다른 곳들처럼 텅 비워진 채로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그곳은 지난 수백년을 그랬듯 자신을 들르는 수많은 마음들을 더없이 따사롭게 감싸 안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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